2021.10.18(월) 맑고 청명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일정의 하나인 만항재에서 예미역까지 약 40 키로 거리의 운탄고도 트레킹을 계획하였기에 어제는 술도 덜 마시고 일찍 자고 오전 5시경 일어나 뜨끈한 국물로 아침을 하고 물과 간식을 넉넉히 챙겨 아직 캄캄한 가운데 야영장을 나서 트레킹의 들머리인 만항재를 향하는데 6시쯤 만항재에 도착할 무렵 서서히 백두대간 산등성이 넘어 동쪽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올라오며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함백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 후 당연히 아무도 없고 영하의 차가운 공기가 뺨에 스치는 쌀쌀한 날씨 속에 임도길을 따라 서쪽 방향으로 어둠을 뚫고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행 방향의 뒷쪽인 동쪽에서 태양이 올라오며 날이 밝아지고 따라서 산등성이를 따라 세워진 풍력 발전기의 기분 나쁜 웅웅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나 태양 빛이 발전기의 날개에 반사되는 모습과 전체적인 그림은 괜찮아 보였다.
운탄고도 트레일 자체는 어차피 과거 석탄을 운반하던 신기슭의 도로길이라 걷기엔 크게 불편함이 없고 따라서 속도도 평균적으로 시속 약 4 키로 정도는 가능하기에 천천히 사진도 찍으며 트레일 변에 세워진 여러 가지 이곳에 대한 안내판과 시구도 음미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9시 반경 육칠십년대 당시 이 지역 최대의 민영 광산이었던 (주)동원탄좌가 최초로 개발하여 채탄을 시작한 의미 있는 갱도를 당시의 원형 모습으로 복원해 놓은 1177 갱에 도착하여 안을 둘러보며 당시의 애환을 상상해 보기도 한 후 아무도 없는 한적한 트레일을 계속 나아가 10 시경 역시나 당시의 애절한 얘기들이 스며있으며 오늘 계획한 트레일의 약 3분의 1 지점인 이름도 무언가 가슴에 와닿는 듯한 도롱이 연못에 도달하였다.
안내판에 새겨진 이곳의 당시 애환을 잘 표현한 김남주 시인의 "검은 눈물"이라는 시도 감상하며 차가운 날씨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한 사람의 외로운 산불 감시원만이 서성이는 연못가의 벤치에 앉아 한참을 휴식하는데 잔잔한 연못의 수면에 비치는 낙엽과 파란 하늘이 오늘따라 눈물겹게 느껴지기도 하였으며 언젠가는 이 세상에 모든 슬픔과 눈물이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실현 불가능한 바람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이후 지척의 거리에 위치한 역시나 이름도 어여쁜 화절령을 지나고 난 뒤에는 어제 올랐던 두위봉의 남쪽 사면을 따라 나아가는데 첩첩이 겹쳐진 산그리메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강원도 다운 대단한 풍광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지루할 틈을 느끼지도 못하고 오후 3시 반 경 화절령에서 약 16 킬로 지점인 아라리 고갯길(새비재)에 도착하여 실질적으로 운탄고도를 거의 완주하게 되었는데 이른 새벽부터 이 시점까지 트레일에서는 쏜살같이 옆을 스쳐가는 대여섯 사람의 자전거 라이더들 외에는 단 한 사람도 조우하지 못한 완벽한 고립감을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트레킹이었다.
새비재를 지난 후 트레일은 고냉지 배추 재배와 수확이 한창인 작은 마을들을 지나면서 전체적으로 급격한 내리막을 이루는데 중간에서는 이곳에서 촬영하였다는 2001년도에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기념하는 타임캡슐 공원과 엽기소나무길이라고 명명된 거리 이름이 특이하였으나 안내 이정표에는 실제 아직도 열차가 운행하는 예미역이 아니라 지금은 폐역이 되어 버린 함백역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정리와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넘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길게 드리우는 내 그림자를 벗하여 지겨운 시멘트 포장길의 내리막을 걸어 오후 5시 40분경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이름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예미역에 도착하니 이제는 차량을 회수하러 만항재까지 가는 일이 우선 해야 할 일로 다가왔다.
하여 이런저런 궁리끝에 우선 이곳에서 허기진 배를 달랜 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타보지 못한 19:31분 출발의 태백선 열차를 타고 고한역까지 간 후 택시로 만행재를 가기로 하고 역 앞 거리의 유일한 식당인 통일 식당에 들어가 혼자라서 약간은 미안한 마음으로 백반을 시켰다.
하나 친절하기까지 한 주인장의 솜씨가 깔끔하여 아주 맛있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저녁을 하고 약간은 낭만적인 느낌의 야간 무궁화호 완행열차를 타고 고한읍 그리고 택시 미터 요금으로 13,100원을 지불하고 이미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힌 만항재에서 차량을 회수 후 야영장으로 돌아와 천국 같은 느낌의 뜨끈한 샤워를 하고 길고도 나름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며 밤 10 시경 간단히 한잔의 술을 하고 꿈나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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