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중국 및 중앙아시아 여행 및 트레킹기

33. 여행을 마무리하며

獨立不懼 遁世無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5. 2. 25. 19:10

2014.9.8(월)-9.9(화) 계속 흐림 및 이슬비

오늘은 추석이다. 내가 처음 중국 땅을 밟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당시는 중국의 경제 사정이 그렇게 많이 발전하지 않아서 인지 춘절이라 불리는 설날에 비해 중추절이라 불리는 추석은 크게 명절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살기가 갈수록 나아지면서 요즘은 추석 명절도 상당히 중요시 여기고 즐기는 분위가 확연해 지고 있었다.

검문 검색을 고려하여 11시 기차 출발시간에 늦지 않도록 숙소에서 나와 귀찮은 검색 과정을 거쳐 대합실로 들어가니 말 그대로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약 1시간 정도를 대합실 창문을 통해 역 광장을 내려다 보며 시간을 죽이다가 청해성의 서녕에서 출발하여 산동성의 청도까지 가는 우리가 매표한 기차에 올라 지정된 침대칸을 찾아가 배낭을 제일 아랫칸 침대 밑에 갈무리하고 중간과 제일 윗칸인 우리 침대에 올라 누우니 몸에 전해오는 적당한 흔들림이 언제나 기분좋게 느껴진다.

이후에는 침대에서 잠을 청하거나 혹은 복도로 내려와 창가에 앉아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라며 시간을 보냈는데 모든 기상 변화가 서쪽에서 동쪽이고 우리가 탄 기차가 거의 정서 방향으로 달리니 우리가 비를 따라 가는 셈이어서 날씨는 전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중원을 서쪽으로 가르며 위남시, 삼문협시, 낙양시를 거쳐 저녁 무렵 하남성의 省都(중국에선 省會)인 정주시를 지나니 밖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우리도 미리 준비한 일종의 컵라면인 중국의 깡스푸(康師博) 팡삐엔미엔(方便麵)과 간식으로 저녁을 하고 태안시 도착 시간인 자정 무렵까지 본격적으로 잠을 청하였으나 이런 저런 상념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사이 기차는 개봉시, 상구시, 서주시를 거쳐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나 날씨는 전혀 좋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여 일행분과 태안시에 내려 태산 등정을 하느냐를 두고 상의를 한 결과 다시 중국으로 들어와서는 계속 날씨도 좋지 않고 우리의 심신도 조금 지치고 더구나 태산은 이름만 요란하지 거의 관광지화 되어있다는 나름의 핑계로 약간은 아쉽지만 태산 등정을 생략하고 이 기차의 종착역인 산동성의 미항이자 맥주로 유명한 칭따오(靑島)로 바로 가기로 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차표를 연장하는 작업인 뿌퍄오(補票)를 하려고 아가씨 승무원에게 얘기를 하니 흔쾌히 오케이 하며 자기들의 대장에게로 데려다 주었다.

헌데 이 사람이 아주 불친절과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찬 얼굴과 표정으로 우리 침대칸을 포함하여 주변에 몇 자리 빈 침대 칸이 있었음에도 그리고 내일 새벽까지 불과 대여섯 시간 사이에 정차역도 두세 군데에 불과 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우리가 정히 안되면 다음 정차역까지 만이라도 현재의 침대 칸에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음 에도 오히려 한국인이니까 욕봐라는 뉘앙스까지 풍기면서 기어이 좌석도 아닌 입석표로 부표해 주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밑의 승무원을 시켜 거의 강압적으로 당장 입석칸으로 짐과 자리를 옮기게 하고는 열차 사이의 문을 잠그는 데는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며 서러움같은 감정마저 밀려왔다.

물론 완전한 의사 소통의 결여에서 오는 오해일 수도 있다고 자위해 보았지만 나름 지금까지 상당한 시간동안  중국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겪은 일중에서 가장 불쾌하였던 기억중의 하나임은 확실하였다.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며 생각해 보니 내가 십 수년전 처음 중국을 여행하던 시절에는 한국인 이라면 부러움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중국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부터는 서서히 부러움과 선망이 시기와 질투의 감정으로 이제는 자신감을 넘어 오만과 심하게 표현하자면 멸시?의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피부로 가끔씩 느꼈는데  물론 모든 중국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고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고 또한 앞으로도 일부이기를 간절히 기대하였다.

아울러 중국과 중국인도 떵샤오핑 시대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를 지나 짱쩌민 시대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해야 할일은 한다)를 거쳐 후진탸오 시대에는 화평굴기(和平山+屈起, 평화롭게 발전한다)를 말하다가 작금의 시진핑 시대에 와서는 드디어 급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주동작위(主動作爲,할일을 주동적으로 한다)로 변하였으니 그들은 이제 대국굴기(大國山+屈起, 큰 나라로 우뚝선다)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한데 지정학적으로 그들의 영향을 벗어나기 힘든 우리로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거창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여튼 승무원들의 호의?로 입석칸에 서서 힘든 새벽 시간을 보낸 후 새벽 6시경 독일 조차 시대의 유럽식 건축물이자 아름다운 해변가에 인접한 칭따오 역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오니 날씨도 역시 우리를 시샘하듯 이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이다.

일행 분과 상의해보니 일행 분도 심적으로 힘들어 노산 등정도 마다하고 빨리 중국땅을 떠나고 싶어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역 앞에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한 후 바로 옆에 인접한 바닷가를 둘러 본 후 버스를 타고 칭따오 국제 공항으로 가서 항공권을 알아보니 오늘만은 중국 항공을 타고 싶지않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 듯 다행히 국적기인 대한항공이 서울 편도 약 1100 위안으로 가장 싸고 좌석도 바로 있어 서둘러 수속을 하고 모든 좋았던 그리고 나빴던 일들을 뒤에 남겨두고 대한민국 영토인 기내에 들어서니 지나간 1달 반이 꿈결같이 뇌리에 흘렀다.

 

                                                              대합실에서 내려다 본 서안 역 광장

 

 

 

 

 

 

 

                       칭따오 역에서 본 고속열차와 역 바로 옆의 해변 그리고 칭따오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