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1(월) 맑음
가이드 북에는 살리 타쉬에서 이르케스탐 고개(Irkeshtam pass)를 넘어 중국의 이얼커스탄(伊爾克什土+旦,이르케스탐의 중국어 음역) 국경을 지나 카쉬카르(喀什)까지 화물트럭 히치를 통해 넘을 수 있다고 되어있으나 100% 확신 할 수는 없었기에 새벽같이 6시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히치를 할 수 있는 삼거리로 가서 차를 기다렸다.
사실 이곳 살리 타쉬는 북부 아프카니스탄의 마약이 국경 보안이 비교적 허술한 타지키스탄을 거쳐 중국이나 다른 중앙 아시아 국가를 통하여 세계로 유통되는 루트로 활용되는 곳이라 검문이 까다롭다는 곳이고 따라서 중국쪽도 더욱 까다롭다고 하고 또한 양국의 시차가 2시간이나 되어 일찍 서둘러야 했다.
기다린지 얼마지나지 않아 수십톤 크기의 대형 화물 운송 차량들이 오쉬쪽에서 오기 시작하는데 처음 몇 대는 손을 흔들었음에도 그냥 지나치고 드디어 차량 한대가 우리앞에 정차는데 풍체가 아주 좋은 키르키즈스탄 기사가 내리더니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차에서 내려 바로 가게로 들어가더니 대형 플라스틱 병에 들어있는 보드카 2병과 과자 등등을 사서 나온다.
차에 오르려는 기사를 붙잡고 중국쪽을 가리키며 손짓 발짓으로 태워주기를 부탁하니 우리더러 중국인이냐고 묻길래 몇 마디 아는 러시아어중에서 카레이스키를 외치니 잠깐 망설이다가 타라고 하면서 여러가지 물건으로 가득한 운전석 옆자리를 치우고 고맙게도 태워주어 우선 일차 관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서서히 태양이 우리가 향하는 방향인 동쪽에서 솟아올라 트랜스 알라이 산맥의 설봉들을 비추고 그 밑에서는 아침안개가 피어 오르는 아름다운 길을 난생 처음 엄청난 크기의 화물 트럭 조수석에 앉아 달리는 기분도 그만이었다.
이곳에서 국경까지는 약 90여 킬로이고 국경에서 카쉬카르까지는 다시 약 230여 킬로인데 키르키즈스탄쪽의 도로는 최근에 새로 포장되고 직선화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보니 중국측의 도로도 고속도로 수준과 고속도로로 이미 건설되어 있었는데 아마 중국측에서 중앙 아시아를 통한 유럽 진출 그리고 미국 견제등의 여러가지 목적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건설해 주고 건설한 것 같았는데 이같은 생각은 중국으로 넘어가며 주변에 인구가 거의 없음에도 고속도로를 미리 건설해 놓은 것을 보고는 더욱 그러하게 생각되었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기 시작한지 약 1시간이 가까워 오고 길은 계속 오르막인데 기사가 갑자기 포장이고 직선화된 도로를 좌측으로 벗어나 비포장이고 굴곡이 심한 과거의 도로로 생각되는 길로 들어서기에 의아하고 약간 당황하여 몸짓 손짓으로 물어보니 걱정치 말라는 표정인지라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냐며 그리고 지금 현재로서는 다른 뾰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말았다.
비포장 도로로 들어선 후 기사는 연신 창밖을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눈치였는데 유목민의 유르트가 보일 때 마다 차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곤 하여 누군가 찾는 사람이 있나 보다 라고 생각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가 마침내 두 세동의 천막이 모여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가까운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보드카 한병과 과자등의 물건을 가지고는 성큼 성큼 천막쪽으로 가더니 거기에서 나온 사람들 모두와 반갑게 인사하며 물건을 건네고는 우리도 오라고 하는데 진짜 유목민의 삶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니 마다 할 이유가 없어 인사하고 같이 합석하여 차와 빵 요거트 그리고 술도 같이 한잔하였는데 아마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사이쯤으로 생각되었다.
사람들과 같이 하면서 살펴보니 사람들이 정말로 순박한데 부모와 자식이 각각 한 가정씩을 이루어 사는것 같았으며 애들도 여러명 보여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천막안에 있는 것보다는 비장의 무기?인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애들 사진을 찍어 주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엔 모두들 시큰둥 하다가 크기는 작지만 선명하게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는 것을 보더니 어른들도 모두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여 기분좋게 모두들에게 독사진 단체사진등을 찍어주었는데 좋아하는 모습에서 힘들었지만 카메라를 챙겨온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다.
기분 좋은 시간이었지만 무작정 있을 순 없는지라 기사가 먼저 일어나자고 하여 다시 차량으로 오니 아이들을 포함하여 남자들만 배웅차 따라 나왔는데 남자가 빈 페트병 2개를 갖고 오고 기사는 차의 엄청나게 큰 연료통에서 호스와 입을 이용한 사이펀의 원리로 기름을 2통 빼주는데 어떻게 보면 좋지 않는 일이지만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는 무작정 비난만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사온 보드카 2병중 한병을 뒤늦게 헤어지기 직전에 여자들 몰래 남자에게 건네 주는데 그것을 보면서 어느곳이나 술마시는 남자들에 대한 여자들의 바가지가 있는가 보다 생각되어 실없는 웃음도 나왔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차량에 올라 조금 운행하여 다시 원래의 좋은 도로에 올려 조금 더 운행하니 최고의 고지가 나타나고 이제는 내리막인데 수계도 바뀌어 물길이 중국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경이 이르케스탐 고개를 지나 중국쪽에 있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고개 마루가 국경이 아닌지는 먼곳에서 온 나그네로서는 알길이 없었다.
내리막길 중간에서 한번의 검문을 거친 후 살리 타쉬와 국경 사이에서 유일한 마을인 누라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자 마자 트럭의 거대한 정차 행렬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기사를 따라 내렸는데 기사말이 여기가 국경이라며 앞으로 곧장 가라고 하여 약간의 사례라도 하려니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여 진정으로 고맙다고 작별 인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국경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수백 미터의 차량 행렬을 지나니 또 다른 검문소이고 그곳을 통과하니 드디어 키르키즈스탄 이미그레이션이 나타나고 특별한 문제 없이 출국 스탬프를 받고 나오니 또다시 마지막 검문이고 이곳 부터 중국 이미그레이션까지는 다시 4 킬로 정도 되는데 그곳에서 다시 트럭을 히치하니 이번에는 중국 트럭이고 기사는 위구르인이다.
이제부턴 중국이라 중간에서 다시 두번 정도의 중국 공안의 검문을 받고서야 이얼커스탄 이미그레이션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도 중국 입경을 기다리는 화물차의 행렬이 대단하다.
이곳 이미그레이션에서 내 생애 최고의 까다로운 검색을 받고 통과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입국 스탬프를 찍어 주지 않아 물어보니 스탬프는 나중에 딴곳에서 찍어 준다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았으나 어쩔 도리가 없이 반대편으로 나오니 마침 전면에 카쉬카르라고 쓰여진 침대 버스가 하나 눈에 띄여 물어보니 바로 이 버스가 가이드 북에서 읽었던 1주일에 한번씩 오쉬와 카쉬카르를 1박 2일에 연결하는 국제버스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대중 교통이다.
사실 이곳부터 카쉬카르까지도 대중 교통이 없으니 또 다시 히치를 해야하나 라고 고민하던 순간이어서 기사에게 물어보니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고 하여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고 버스에 올랐는데 10여명 정도밖에 되지않는 승객들은 대부분 상인들로 보였고 유일하게 여행자가 한명 보여 물어보니 다나까란 일본 여행자이다.
승객들이 다 타자 먼저 기사가 다시 여권을 달라고 하여 자기가 보관하는데 아직도 진정한 입국 수속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 의아하였다.
버스는 느린 속도로 약 2시간을 달려 도로가 철제 문으로 막힌 곳에서 무슨 영문 인지도 모른채 1시간 이상을 지체 후 겨우 철문이 열리고 조금가니 이곳이 진정으로 입출국 수속을 하는 곳인데 지명을 보니 우차셴(烏恰縣)이란 곳인데 카쉬카르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곳이었다.
버스 승객들 중 상인들의 짐 검색과 일부 압수등으로 인해 다시 한 시간 정도를 지체 후 겨우 출발하여 결국은 오후 6시쯤 2001년 후 실로 13년 만에 두번째로 카쉬카르에 도착 하였고 이 후 다나까와 같이 삼륜 오토바이 인력거를 15 위안에 흥정하여 잡아타고 숙소로 예정하였던 구 시가지에 위치한 일종의 유스호스텔인 라오청 칭니엔뤼스(老城靑年旅舍)에 도착하여 투숙 후 우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다나까를 포함하여 셋이서 부근의 한족 식당을 찾아 시원한 칭따오 맥주와 몇가지 요리 그리고 쌀밥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는 느낌이었다.
이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 후 길고도 길었던 하루를 돌아보며 파김치가 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일찍 잠을 청하였다.
이른 아침 히치를 위해 삼거리에서 서성이면서 보이는 살리 타쉬 마을
다행히도 히치에 성공하여 화물 트럭을 타고 가며
중간에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들르게 된 기사가 아는 유목민의 텐트와 그곳에서의 즐거웠던 여러 기억과 순간들
다시 차에 올라 최근 지진으로 파괴되어 위령탑도 있고 완전히 마을을 새로지어 옮겼다는 마지막 작은 국경 마을 누라를 지나 많은 차량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곳까지, 그곳에서 고마운 기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도보와 또다른 히치로 중국 입국의 일차관문까지
다행히 지나가는 국제버스를 중간에 얻어타고 국경으로 부터 170 여킬로 떨어져 있는 진짜 이미그레이션인 우차셴에서
중국 입국 수속을 하고
키르키즈스탄과 중국사이의 2개의 육로 국경 중 다른 하나이나 개인 여행자에겐 개방되어 있지 않은 투르갓 패스(투얼가터 코우안)으로 갈라지는 곳을 지나 카쉬카르 시가지 한쪽 구석에 위치한 버스터미날까지
2001년에 비하여 엄청나게 변한 카쉬카르 시가지와 GH의 모습 그리고 꿀맛 같았던 저녁 식사
트럭의 조수석에서 키르키즈스탄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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