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봄 중국 운남에서 방콕까지

2. 루구호를 거쳐 쿤밍 그리고 허코우를 거쳐 사파까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1. 11. 27. 10:26

2002.4.15(월)

사쿠라 카페에서 된장찌개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후 리쟝에서 북동쪽으로 약 8시간 거리이며 사천성과의 경계에 위치한 루꾸(瀘沽)호반의 모소족을 찾아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곳까지 가는 길은 황량한 고원지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양자강의 최상류인 진사지앙(金沙江)의 격류를 지나며 많은 소수민족 마을을 지나는 흥미로운 여정이었습니다.
루꾸호는 해발 2,690 미터에 위치한 약 50 평방 제곱킬로미터 크기의 맑고 아름다운 호수로써 그 기슭에는 어떤 이유인지 모계사회의 옛날 전통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습니다.

이곳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리쟝에서 소개받은 아자네 집이라는 원주민의 집으로 찾아가서 하루의 숙식과 그들만의 독특한 의식을(씨받이 역할을 할 남자를 정하는 의식)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그들은 한여자가 여러 남자를 거느릴 수도 있으며 당연히 경제권을 포함한 집안의 모든 권한은 여자가 가지고 있으며 상속도 딸을 통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아이들은 맑고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어 기억에 남았으며 특히 저녁식사는 독특한 술과 특이한 음식 그리고 친절함으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루구호에서
                   
2002.4.16(화)
오늘은 일정상 쿤밍까지 가야하기 때문에(4.17일 오후 4시에 베트남행 기차표를 쿤밍의 여행사에 부탁해 놓았음)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출발하여 지름길을 택해 약 20여 시간을 달렸으나 결국 쿤밍까지 가지못하고 밤 12시를 넘겨 추슝(楚雄)이라는 곳에서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중에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드른 삔촨(賓川)이란 곳에서는 우리가 오히려 사람들의 구경꺼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2002.4.17(수)
쿤밍의 대표적인 명소인 스린(石林)을 가기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길가의 허름한 식당에서 국수로 아침을 대신하고 쿤밍시내를 거쳐 스린쪽으로 가는 길로 들어 섰으나 약 한시간 정도 가다가 무슨 이유인지 차량은 꼼짝하지 못하고 길위에서 기다리기를 약 한시간이 넘어가자  베트남행 기차시간은 다가오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스린과 같은 유명 관광지는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올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스린을 포기하고 기차를 타기로 하고 차를 돌려 쿤밍 북역으로 오니 약간의 시간여유가 남아 집으로 전화를 하니 김해 공항의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로 마누라의 걱정이 대단하고 부디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이제와 일을 쉬면서 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열차는 쿤밍에서 베트남과의 남쪽국경인 허코우시(河口)까지 약 400키로미터의 거리를 약 16시간에 걸쳐 달리는 일종의 완행열차였는데 좌석은 잉워(硬臥;딱딱한 침대칸)로써 문이 없는 4인 1실이었으며(요금은 75위안) 저녁식사는 열차안에서 파는 허판(闔飯)이라는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열대 우림으로 변해가는 창밖의 경치를 보다가 잠이들었습니다.




                                                          허코우행 기차를 타고


2002.4.18(목)

불편한 잠자리로 인해 뒤척이다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본 바깥풍경은 붉은 황토색의 강(이 강은 물색깔과 같이 홍강이라고 하며 베트남의 동킹만으로 흘러 들어감)과 주변의 파파야, 바나나, 망고나무 등으로 인해 열대지방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중국의 광대함을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오전 9시경 도착한 허코우시는 생각보다 깨끗한 모습이었으며 생각지도 못한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까지 있어 오랜만에 콜라맛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양국 상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으며 어린 꼬마들이 이곳 특산품이라면서 해먹(그물침대)을 팔고있어 15위엔을 주고 제일먼저 하나를 샀는데 딴 사람들이 사려고 하지 않으니까 가격이 그 자리에서 5위엔까지 내려가는 황당함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이 1978년 중월전쟁 당시 격전지였다고 하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장사하고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으로 보였습니다.
별다른 일없이 출국 수속을 하고 국경을 이루는 다리를 건너 베트남측 이민국과 세관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하려니 관리들이 불친절하지는 않지만 무뚝뚝한 표정에 일처리는 느렸습니다.

과거의 북 베트남이었던 이곳 사람들은 수많은 외침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대단하여 자존심이 센 반면 무뚝뚝한 성격이 형성 되었고 남 베트남은 그 반대로써 아직까지 서로 경원시 하는 면이 있다하니 외세로 인해 성격마져 달라진 약소민족의 비애에 동병상련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며 우리도 통일후 민족 동질성의 회복과 화합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우울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세관밖으로 나오니 바로 이곳이 북서 베트남의 중심도시인 라오카이(Lao cai)이며 초,중,고시절 TV에서 많이 보았던 녹색의 군용모자와 대나무로 만든 삿갓모양의 모자를 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아직도 군용모자를 쓰는 것이 의아했으나 이 모자가 기능적으로 아주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길에는 많은 환전상 아주머니들이 아무런 제제없이 환전을 하고있어 약간의 환전을 하였는데 1달러당 환율이 무려 15,000동(베트남의 화폐단위)에 달하여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거 수년전 베트남 경제가 괜찮았을 때는 약 9,000동 정도였다는데 이로 미루어 최근의 개혁 개방 정책의 이유도 유추해 볼 수 있었으며 또한 모든 단위 지폐의 인물은 오직 호치민 한사람으로 그가 베트남인들로부터 얼마나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있는지를 화폐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부근에서 승합차를 1인당 20,000동에 흥정하여 약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고산 소수민족들의 중심지이며 고산 휴양도시이자 인도차이나 최고봉인 판 시판산(해발 3,143미터) 등산 기점인 사파(sapa)로 향했습니다.

벌써 우기가 가까워서인지 비가 내리는 울창한 열대림의 오르막 길을 한시간 가량 가니 홀현히 구름사이로 흰색과 붉은색으로 칠한 지중해풍의 건물들이 나타나며 상당히 큰 규모의 마을인 사파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마운틴 뷰 호텔(비교적 깨끗한 곳으로 2인 1실에 하루 숙박료가 3달러임)이라는 곳에 여장을 풀고 레스토랑과 여행사 역할을 하는 로비로 가니 닌 홍이라는 이름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사장이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맞이하여 주었으며 또한 레스토랑의 쌀국수를 포함한 여러 음식들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우선 판시판산 등산을 예약하고(가이드와 숙식 포함 2박 3일에 25달러) 내일을 위하여 비가 그치기를 빌며 일찍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을 넘어 사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