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6(금) 흐림
어제 야간 근무를 하고 오늘 점심 무렵 숙소로 돌아와 주말을 같이 보내려 온 와이프와 같이 간단히 라면으로 점심을 한 후 조금 쉬다가 오후 3시경 산책 삼아 나와 먼저 숙소에서 가까운 조선조 세조때 일어난 단종 복위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사육신 중의 한 분인 박팽년선생 유허를 찾았는데 채 40년도 살지 못하였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생각을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였던 선생의 기개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선생의 사후 200 여년이니 더 지난 뒤에 이지역의 대 선비인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는 유허비는 그놈의 코로나 19로 인하여 담장 너머로 밖에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정작 더욱 아쉬운 것은 대전 광역시에서 세워둔 안내문에 조선조 현종 임금을 헌종으로 표기하여 둔 것으로 답답한 느낌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근의 주택가에서는 시대의 어수선함을 나타내듯 시월에 피는 붉은 장미도 보여 헛웃음이 나왔다.
젊은 선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우암 송시열을 모신 사적공원을 찾으니 가을 정취속에 잘 꾸며놓은 사적공원은 늦은 오후라서인지 한적함속에 몇 사람의 산책객들만 보였다.
이후에는 사적공원에서 연결되는 등산로를 타고 올라 대전시계 산길을 따라 계족산쪽으로 향하다가 길치고개를 거쳐 폐허의 서늘한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질현성에서 저물어 가는 하루를 아쉬워 하며 대청호를 조망 후 길치근린공원(=가양비래공원?) 쪽으로 하산하니 날은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숙소쪽으로 오다가 눈에 뜨이는 양푼이 동태찌게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하고 내일부터 1박2일의 지리산쪽 여행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오늘 일정중에서 정말로 대단한 것은 우암 사적공원에서 올라간지 얼마되지 않은 곳으로 아마 경부고속도로 대전터널 상부쯤을 지날때 쯤 등산로 바로 옆의 나무에서 딱따구리 한마리가 시끄러운 차량의 소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길래 나의 구닥다리 휴대전화로 촬영을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와이프의 최신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 이 상황을 자연의 위대함으로 해석할 지 아니면 먹이활동을 해야만 하는 생명의 처절한 본능으로 봐야 할지 약간은 혼란스럽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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