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인도 네팔 여행기

7. 다시 뉴델리 그리고 집으로

獨立不懼 遁世無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1. 12. 4. 19:24

2003.6.13(금)
오전8시경 또 다시 끔찍한 밤이 지나고 바라나시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전에 묵었던 샨티 게스트하우스에 첵크인 후 델리행 기차표를 부탁하니 오늘은 표가 없다 하여 내일 오후6시45분 발 기차를 예약하고 방으로 돌아와 악화된 감기 몸살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눕혔다. 오후에 겨우 일어나니 아직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옥상의 식당과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을 추스릴 수 밖에 없었는데 밤에 옥상에서 내려다 보는 갠지스강과 시가지의 모습도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2003.6.14(토)
저녁 기차시간까지도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에 이상하게도 정이 가지 않고 또한 좋지 않은 몸 상태와 폭염으로 인해 바로 앞의 라가 까페와 옥상의 식당 그리고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6시45분 바라나시역에서 "시바 강가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의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서는 같은 칸에 타게 된 존이라는 이름의 젊은 영국인 부부와 어울리게 되었는데 나이가 29세밖에 안됨에도 불구하고 점잖하고 사려깊으며 주위의 인도 젊은이들이 귀찮게 하여도 겸손한 모습을 보여 영국 신사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이들이 영어를 무기로 동양의 여러나라를 아르바이트로 일해 가며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여행하고 있다는 말에 비 영어권 국민으로서의 묘한 질투심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또한 부인 할 수 없었다.

 

                                        다시찾은 바라나시

 


2003.6.15(일)
아침8시반경 눈에 익은 뉴 델리역에 도착하여 전에 묵었던 마이 호텔의 일반 룸에 투숙한 후 메인 바자르의 인터넷 까페와 여행사 그리고 만나는 한국 여행자 들에게서 다람살라에 대한 정보를 모아 보니 감기 몸살과 더불어 입 주위까지 부르터진 현재의 나의 몸 상태와 일정으로는 무리일 것 같아 일행과 작별하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가능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저녁이 되었음에도 도저히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어(뉴스에 보니 섭씨 48도라고 하며 내일은 50도가 예상된다 함) 세배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에어컨 방으로 옮겼으나 이 또한 밤새 반복되는 정전으로 인해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이는 약간의 의도적인 정전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2003.6.16(월)
오전에 오토릭샤로 코넛 플레이스 근처의 에어 인디아 사무실을 방문하여 돌아가는 항공권을 내일 저녁 출발 편으로 앞당겨 변경한 후 호텔로 돌아오니 정전이 계속되고 있어 부근의 스마일 인이라는 숙소에 가보니 그 곳은 정전이 아닌 상태였다. 이제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여 마이 호텔로 돌아와 매니저와 의도적인 정전에 대해 따진 후 스마일 인으로 숙소를 옮기고 부근의 인터넷 바에서 시간을 보냈다.

 

                                          뉴 델리 역앞의 결혼 차량

 


2003.6.17(화)
더위에도 불구하고 방안에서만 있기에는 너무 아쉽고 욕심이 앞선 나머지 일찍 호텔을 나와 골든 까페라는 곳에서 오리지날 한국 신 라면으로 기운을 차린 다음 오토릭샤로 간디 박물관을 방문하여 위대한 영혼 간디의 행적에 깊은 감명을 받고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 후 호텔에서 소개한 택시를 타고(공항까지 200루피) 오후3시경 인디라 간디 국제 공항을 향하였다.
뉴 델리 공항 대합실에서 돌아가는 일정이 같은 대학생을 만나 서로의 여행담을 나누며 지겹지 않게 방콕에서 대한항공으로 트랜짓을 하고 인천 공항에 6월18일 오전8시경 도착하니 한국의 더위는 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며 지독한 더위와 무리한 일정으로 체중이 10키로나 줄 정도로 엄청난 고생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그리움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며집으로 향하는 버스의 안락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읽어 주어 고맙습니다.

 

 

 

 

                                     간디 박물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