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인도 네팔 여행기

5. 다르질링을 거쳐 카투만두로

獨立不懼 遁世無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1. 12. 4. 17:23

2003.6.3(화)
이른 기상 후 인도에서 유일한 지하철을 타고 스님과 함께 물어물어 찾아간 시성 타고르 하우스는 현재 소규모의 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나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으며 후르시쵸프시대에 구 소련의 도움으로 건립되었다는 명문이 세겨진 타고르의 흉상만이 쓸쓸하게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스님의 낡은 100달러짜리 지페를 환전하기 위해 인디아 은행을 3군데나 거치면서 경험한 인도의 공직사회는 고압적인 자세와 불친절과 기다림으로 수십년 전 우리의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인도에서는 낡은 돈은 어디서나 굉장히 꺼려하므로 주의를 요함)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 후 배낭을 카운터에 맡긴 뒤 부근에 있는 인도 최초이자 최대의 박물관인 인도 박물관을 찬찬히 관람 후 오후5시경 밤 기차에 대비하여 뽁음밥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콜카타에 있는 또 하나의 기차역인 실다역으로 가서 오후7시경 "다르질링 메일 익스프레스"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인 야간기차에 몸을 싣고 북쪽을 향하였다.

 

 

                                                 타고르 하우스

 

 

                                            꼴까타의거리

 

 

 

 

                                        인디안 뮤지움의 이모저모

 

2003.6.4(수)
야간 기차의 좁은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새벽 여명에 눈을 뜨고 객차 연결 부위로 나오니 아직도 야자수가 보이고 더위도 여전한 것 같고 또한 지평선에서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사실로 인도 아대륙의 크기도 만만찮음을 알 수 있었다.
오전8시반경 종착역인 뉴 잘패이구리역에 도착하니 기온도 약간 내려간 것 같고 멀리 북쪽 구름 사이로 인도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고산의 모습에 약간의 흥분도 느껴졌다. 역 광장에서 합승 짚으로(1인당 200루피) 실리구리를 거쳐 히말라야 산록을 굽이굽이 돌아 정오경 다르질링의 중심가에 도착하니(해발 약2200미터) 선선함을 지나 약간의 쌀쌀함 마져 느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 있었다.

또한 이 길은 영국 식민시대에 피서객들의 수송을 위하여 건설되었고 요즘도 실제 운행하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중의 하나인 장난감 기차(toy train)길과 나란히 나있었는데 속도가 매우 느린 관계로(시속 약8킬로미터) 현지인들이 가까운 거리만 이용한다고 하였다.
이곳의 주민은 대부분이 티벳 및 네팔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유명한 셀파 텐징 노르게이의 고향이기도 한 관계로 그를 기념하기 위한 히말라야 마운틴니어링 인스티튜트가 설립되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들은 주로 인도의 피서객들을 상대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요즘이 피크시즌인 고로 거리는 인도인들로 가득 차 있어 우리도 숙소를 구하는데 곤란을 겪었다.

한참을 헤멘 뒤에 오팔 인이라는 전망 좋은 곳에(트윈룸에 500루피) 체크인 후 부근의 티벳탄 식당에서 모모(티벳식 만두)와 툭바(티벳식 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숙소로 돌아와 옥상에서 햇살을 받아 빛나는 칸첸충가와 주변의 수려한 산세를 보며 휴식을 취하였다. 헌데 늦은 오후가 되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호텔측에 문의 해보니 남쪽과 달리 이곳 북쪽지방은 지형의 영향으로 벌써 우기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며 오전 중에는 날이 맑을 때가 많으니 우리가 내일 새벽 1인당 100루피에 예약해 놓은 타이거 힐(부근에 있는 해발2700미터 정도의 전망 포인트로 칸첸충가와 히말라야산맥 일출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방문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2003.6.5(목)
새벽3시경 기상하여 지프로 약40여분을 달려 도착한 타이거 힐 뷰포인트는 우리의 관습과 비슷하게 일출을 보러온 수많은 인도인들로 붐볏으며 호텔측의 예상대로 날씨가 쾌청하여 장엄한 히말라야의 일출과 찬란하게 빛나는 칸첸충가의 모습은 감격 그 자체였다. 돌아오는 길에 방문한 곰파(티벳 사원)도 우리와 다른 밀교 계통 불교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전8시경 호텔로 돌아와 모자란 잠을 보충한 뒤 오후에는 히말라야 마운틴니어링 인스티튜트를 거쳐 로프 웨이라 불리는 일종의 케이블 카를 이용하여 다르질링 홍차로 유명한 차밭을 구경하였는데 그 규모의 방대함이 우리나라의 보성 차밭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정전으로 인해 1시간정도 두려움에 떨면서 허공에 매달려 있었는데 같은 칸에 탄 남인도에서 온 가족들은 이 같은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 일체유심조라는 불교용어를 생각나게 했으며 또한 비와 더불어 나타난 쌍무지개도 어린시절 이후 수십년 만에 보는 황홀한 것이었다.

 

 

 

 

 

                                                              타이거 힐에서

 

 

 

                                    해피 밸리와 쵸우라스타 광장

 

 

2003.6.6(금)
기상 후 짐정리를 하면서 카쥬라호에서 산 인도의상을 탈색과 봉제의 허술함 때문에 버리고 체크아웃을 한 다음 엄청난 더위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일행들과 상의 결과 네팔을 가로질러 설산도 보며 델리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오전10시경 역시 합승짚으로 동부 네팔과의 국경마을인 라니간지에 오후1시30분경 도착하여 인도 출국 수속을 하고 네팔의 국경도시인 카카르비타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한국의 안양에서 7년 동안 일하였고 우리말이 유창하며 나름대로 성공한 듯이 보이고 따라서 한국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방글라데쉬인들을 만난 것도 흐뭇한 기억중의 하나였다.
네팔 이미그레이션에서 30달러를 주고 비자를 받은 후 부근의 은행에서 환전을 하고(네팔은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인도의 속국이나 다름이 없어 인도화폐가 국경이나 큰 도시에서는 1.6배의 가치로 통용이 되며 단위도 같은 루피임 또한 인도와 네팔은 문자는 같고 말만 다르다고 함) 버스 터미널에서 오후6시 발 카투만두행 로칼 나이트버스를 예약한 뒤 근처의 식당에서 마침 티브이로 중계되는 프랑스 오픈 테니스를 보며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부분이 인도 출신의 왕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정치체제에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따라서 현재 유지되고 있는 마오이스트 공산 반군과의 휴전상태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약간의 불안감도 느껴졌다.

오후6시경 현지인들로 가득찬 야간버스에 올라 서쪽 약 600키로미터 떨어진 카투만두까지 가는 길은 다양한 현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으나 역시 악몽같이 괴로운 밤이었다. 또한 수 시간마다 휴게소 비슷한 곳에서의 휴식시간에 볼 수 있었던 엄청난 숫자의 반딧불도 장관이었다.

 

                                                  토이 트레인

 

                                         인도 쪽 이미그레이션이 있는 라니간지의 체크폿트

      

                                      야간 버스가 정차한 새벽녁에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