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인도 네팔 여행기

4. 사르나트를 들르고 콜카타로

獨立不懼 遁世無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1. 12. 4. 15:13

2003.5.30(금)
숙소 부근에 있는 라가 카페라는 한국식당(현지인이 유학생이나 여행객들로부터 한국음식 조리법을 배워 운영하는 곳인데 그런대로 맛을 냄)에서 오랜만에 된장찌개 백반(120루피)으로 늦은 아침식사 후 약10여 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불교 4대유적지(부처님의 탄생지인 네팔의 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곳인 보드 가야, 처음 설법한곳인 사르나츠, 입적한곳인 쿠쉬나가르)중의 하나인 사르나츠로 가기위해 스님과 같이 고돌리아거리에서 오토릭샤를 왕복 150루피에 흥정하여 폭염과 혼돈 그 자체인 바라나시 시내를 관통하여 사르나츠로 향하였다.
약1시간 후 도착한 교외의 숲 속에 위치한 사르나츠 유적지(입장료 100루피)는 부처님이 보드 가야의 보리수나무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도반을 상대로 처음행한 초전법륜을 기념하기 위해 후대의 누군가가 세운 다멕 스튜파를 중심으로 아쇼카 석주를 포함한 폐허의 건물군과 사슴을 비롯한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있는 정원과 멀리서 주변을 둘러싸면서 산재해있는 녹야원이라는 한국 절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절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다멕 스튜파를 둘러보는 도중 어린아이들이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으며 접근하여 이곳에서 출토된 진흙 부처님상이라며 사기를 집요하게 권하여 스님께서 “내가 부처님 상을 어떻게 깍겠느냐”며 500루피에 구입한 후 나에게도 사기를 요구하여 계속 거절하니 우리가 나올 무렵에는 가격이 10루피까지 떨어지는 황당한 일도 있어 스님과 마주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나는 녹야원을 방문하기를 원하였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스님께서 꺼려하여 그냥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오후5시반경 숙소를 나와 많은 가트중에 중심으로 메인 가트라고 불리는 다사스와메트가트의 계단에 앉아 약 두 시간 동안 힌두교의 예배의식(푸자)를 관람하였는데 자세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와 다른 음악과 사제의 복장, 코브라 형태인 향로와 경건한 자세로 의식을 행하는 현지 일반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름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드른 라가 카페에서의 싯타르(인도의 대표적인 현악기) 연주도 매우 감동적이었으나 역시 길을 잃어버려 한참을 헤메다 숙소로 올 수 있었다.

 

사르나츠 유적지 부러진 아쇼카 석주도 보이고

 

 

 

강가의 가트에서 행해지는 뿌자

 

2003.5.31(토)
엄청난 더위로 인해 외출은 생각도 못하고 옥상의 환전소 겸 여행사에서 인도의 가장 동쪽 콜카타(구명 캘커타)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문의하니 당분간 침대칸이 없다고 하나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고 이상하게도 바라나시를 빨리 떠나고 싶어 스님 및 일행과 상의하여 오늘 오후5시30분 발 콜카타 행 기차 입석표를 예매한 뒤 근처의 라가 카페에서 한국 신 라면과 공기 밥(130루피)으로 늦은 아침을 때운 후 창문 아래로 흰 천과 노란색의 꽃에 싸인 채 사람들의 구성진 주문 속에 버닝 가트 쪽으로 내려가는 운구 행렬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정오경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 후 옥상의 식당에서 갠지스강을 내려다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토릭샤로 바라나시역에 도착 후 오후5시반 경 침대칸을 확보하지 못한 관계로 콜카타 행 기차의 아무 칸에나 올라탄 다음 차장을 통해 침대를 확보할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다음날 오전11시경 콜카타에 도착할 때까지 약18시간동안 화장실 앞과 여기저기 일시적으로 비는 침대와 바닦을 옮겨 다니면서 거의 초죽음의 상태로 지냈다.

 

 

 

 

                                         바라나시 역과 꼴까타행 기차에서


2003.6.1(일)
보드가야를 거쳐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동이 트고 콜카타가 가까워지면서 기차 내에서 꼬마들이 파는 짜이(1잔에 3루피)를 몇 잔 연거푸 마신 뒤 정신을 차리고 콜카타의 하우라역에 내리니 콜카타가 인도의 수도이던 시절 런던역을 본따 지었다는 붉은색의 웅장한 역 건물은 우리의 구 서울역을 연상케 했다.
역 앞 택시 정류장에서 스님과 같이 택시를 타고(90루피) 여행자들의 거리인 서더 스트리트에 위치한 센터포인트 게스트 하우스의 비좁고 더러운 트윈룸(250루피)에 파김치가 된 몸을 뉘었다. 저녁 해가진 뒤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근처의 리튼 호텔 식당에서 일행들과 스테이크(120루피)로 식사 후 주변의 거리를 둘러보았는데 마더 데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여학생을 비릇한 상당한 수의 한국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2003.6.2(월)
더위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도보로 시내에 위치한 성 바오로 교회, 빅토리아 기념관, 하우라 강변, 에덴 정원등을 둘러보고 조조스 식당에서 뽁음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 후 숙소로 돌아왔으나 도저히 더위를 견딜 수 없어 스님과 상의하여 체크아웃 후 부근의 아스토리아 호텔의 에어콘 방(850루피)으로 옮긴 후 밀린 빨래를 하고 실로 오랜만에 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역시 조조스에서 중국식 쵸미엔(뽁음면)으로 식사 후 부근의 시장에 가서 잃어버린 손수건도 사고 망고와 바나나 등의 과일도 사서 숙소의 냉장고에 넣어두고 오랜만에 CNN도 보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헌데 TV를 보는 도중 현재 인도의 폭염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데 내용이 우리가 가려는 중남부 인도를 살인적인 폭염이 휩쓸어 수천명이 사망하였다는 것이었다. 해서 일행과 상의하여 다음 행선지를 영국 식민시대부터 여름 피서지로 이용된 인도 동북단의 히말라야 고산지역이며 세계3위봉인 칸첸충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다르질링으로 바꾸고 호텔에 매표를 부탁하였다.

 

 

                                               꼴까타 중심가의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