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24(토)
늦은 기상 후 옥상 식당에서 치킨 커리와 라시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TV와 가이드 북을 뒤적이다가 뉴 델리는 돌아올때도 들리므로 일단 타즈 마할의 도시인 아그라로 가기로 하고 오토 릭샤로 도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니쟈무딘역으로 향하였다.(뉴 델리에는 여러개의 기차역과 버스정거장이 있어 가고자 하는 곳에 따라 차이가 있음)
오후 2시30분경 아그라행 열차에 올라 인도의 가난해 보이는 농촌 마을을 보면서 오후 5시경 아그라 칸트역(칸트는 병영이라는 뜻의 cantonment의 준말로 영국 식민시대에 영국군이 주둔했던 외곽지로써 요즈음은 주로 신시가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일부 도시에는 본역 외에도 칸트역이 있음)에 도착해 프리페이드 오토릭샤(37루피)로 타즈 간지(타즈는 묘, 간지는 마을 혹은 거리를 의미함)의 허름하지만 이름은 거룩한 싯다르타 호텔에 투숙하였다.(1박에 역시150루피)
이 호텔의 정원에는 원숭이 떼가 노니고 방에는 엄청난 수의 모기가 날고 있어 밤을 걱정하게끔했다. 샤워 후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join us 레스토랑의 옥상에서 타즈 마할을 바라보며 탈리(푸석한 쌀밥과 커리 그리고 맛살라는 양념으로 구성된 인도의 대중적인 정식,40루피)로 저녁을 해결한 후 TV도 없는 숙소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잠을 청하였다.
니쟈무딘 역과 아그라 칸트역에서
레스토랑 옥상에서 바라본 타즈 마할
2003.5.25(일)
더위와 모기에 밤새 시달리다 일어나 호텔 마당의 식당에서 탈리와 짜이(우유에 홍차와 설탕을 듬뿍 썩어 끓인 대중적인 음료로 3에서 5루피)로 아침 후 타즈 마할로 향하였다. 책에서와 같이 외국인에게는 이중가격이 적용되어 현지인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750루피에 티켓을 구입 후 엄격한 몸수색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니 건기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폭염으로 인한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허나 이 아름다운 건축물도 인도의 산업화로 인한 공해로 나날이 손상의 정도가 심해진다고 하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이곳 아그라에 도읍을 두고 번성할 때 일찍 죽은 두 번째 부인의 무덤으로 축조한 아름다운 건축물의 흰 대리석은 뜨거운 햇빛 아래 황홀하게 빛나고 있지만 수많은 노역에 시달렸을 당시 민초들의 고단함 또한 대단했을 거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으며 또한 아그라는 샤 자한 황제 자신이 아들인 아우랑제브 황제에 의해 7년이나 유폐 당했다가 결국은 비참한 죽임을 당한 슬픈 곳이기기도 합니다.
오후 1시경 호텔로 돌아와 숙박료의 반을 더 주기로 하고 체크 아웃 시간을 미리 예약한 사트나(다음 목적자인 카쥬라호에서 가까운 기차역)행 기차시간까지(19시20분) 연장한 후 낮잠과 독서로 소일하다 오토 릭샤를 이용 아그라역에서 기차에 올랐다.
이번 기차는 일반 침대칸이 매진되어 하는 수 없이 비싼 가격(676루피)에 3등 에어컨 침대를 탈 수 밖에 없었는데 다음날 아침7시 까지 약12시간 동안 오히려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또한 싯다르타 호텔을 떠날 때 종업원 중 한명이 한국 티셔츠를 간절히 원하여 입고 있던 라피도 상표의 라운드셔츠를 주고 떠났는 일도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타즈 마할의 이모저모
호텔의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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