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인도 네팔 여행기

6.포카라 그리고 룸비니를 거쳐 다시 바라나시로

獨立不懼 遁世無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1. 12. 4. 19:09

2003.6.7(토)
오전 10시경 약 16시간의 사투 끝에 카투만두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여행자의 거리인 타멜 거리까지 릭샤로 이동한 후 실수로 호객꾼들을 따라 비싼 가격에(1박에 350네팔 루피) 스워니가 호텔이란 곳에 투숙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몸을 추스린 뒤 밖으로 나와 한국 산악인들이 주로 가는 빌라 에베레스트의 한국 식당에서 스님과 오랜만에 김치찌개로 배를 채운 뒤(시즌이 아니라서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나 벽면에는 한국의 유명산악인들의 사진 및 메모와 싸인으로 도배되어 있었음) 타멜 거리를 거닐다가 노스페이스 상표의 플리스 조끼를 너무 싼 나머지(400네팔 루피) 하나 사고 비제이라는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는 네팔 청년이 운영하는 쉼터라는 곳에서 차 한잔을 하고 카투만두의 대표적인 사원이며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위에 위치한 스와얌부나트 사원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원숭이가 많아 멍키 템플이라고도 불리며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가니 독특한 구조의 탑신에 제3의눈(또 하나의 눈이라는 깊은 뜻이라고 함)이라고 불리는 큰 눈을 형상화한 모습이 탑의 상부에 그려져 있고  탑 주위로는 티벳 불교의 마니차(불경이 새겨진 금속의 원통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구조이며 탑 주위를 돌며 이것을 한번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경륜통)들이 가득히 둘러싸고 있어 힌두교의 타 종교에 대한 관대함 혹은 포용성과 그로 인해 이어져온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해 주었으며 실제로도 인도의 일부 지방에서는 예수님도 수많은 힌두 신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며 부처님도 시바신의 아홉 번째 환생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 승려들로부터 티카(흰두교에서 이마 중앙에 축복의 표시로 찍어주는 빨간 점)를 찍히고 기부를 강요당하기도 하였다.

저녁은 고철거사라는 호을 사용하며 히말라야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분이 운영하는 소풍이라는 한국식당에서 비빔밥으로 한 후 덜발광장(구왕궁과 주변의 여러 사원 그리고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쿠마리가 거주하는 신전등으로 이루어져있는 카투만두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와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전 설산을 볼 욕심으로 내일 아침6시30분 출발의 포카라행 투어버스를 예약하고(1인당 300네팔 루피) 지친 몸을 눕혔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


2003.6.8(월)
오전5시반경 일어나니 우려한대로 가는 빗줄기가 뿌리고 있었지만 어차피 인도의 델리로 다시 들어가야 하기에 인도로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포카라로 계획대로 가기로 하고 투어 버스에 올랐다.
서쪽으로 약200킬로미터 떨어진 포카라로 가는 길은 빠르게 흐르는 강과 고개와 아열대의 숲으로 우거진 평원을 지나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었으나 도로의 상태는 하이웨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 할 만큼 산사태 등으로 좋지 않았으며 따라서 빗줄기가 더 굵어진 포카라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2시경이었다.
버스 터미널의 호객꾼들 중 괜찮은 인상의 친구를 따라 포카라 마운틴 리조트라는 이름만 거창한 넓은 마당을 가진 숙소에(320 네팔 루피) 투숙한 뒤 잠시 비가 그친 틈에 페와 호수(포카라의 관광 중심인 인공 호수)변의 레이크 사이드라고 불리는 거리로 나오니 호수변의 좋은 위치에는 네팔 왕의 별장이 삼엄한 군인들의 경계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멀리 구름 사이로 보이는 마차푸차레와 그 주변의 설산들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인터넷 정보대로 역시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는 네팔리가 운영하는 김치하우스라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 후 스님은 별로 생각이 없는 듯 해서 혼자 주인장을 통해 우기가 시작 되었지만 그냥 가기가 너무 아쉬워 날씨는 운명에 맡기고 내일 1일 트렉킹을 모든 것 포함 20달러에(환율은 1달러 당 약75네팔 루피) 예약하고 내일 아침 식사용으로 빵과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2003.6.9(일)
우기라도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니고 이른 아침은 맑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오전5시 반 경 기상하여 가이드와 택시가 기다리는 호텔 앞으로 나오니 기대와는 달리 비는 오지 않지만 흐린 날씨였다.
허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 택시를 약40분 달려 페디라는 곳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담푸스, 나우난다, 카시, 사랑코트, 페와 호수를 있는 힘든 거리였으며 가는 비가 오락 가락하는 속에서 짙은 구름으로 인해 설산은 전혀 볼 수가 없었지만 순박한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과 산간의 조그마한 학교와 말로만 듣던 산 거머리 그리고 짜이를 한 잔 할려고 들은 집에서 본 심한 병을 앓고 있는 젊은 여인네에게 병원비를 도와준 일 등은 기억에 남았다.
오후5시경 숙소로 돌아와 샤워 후 스님과 같이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티벳탄 식당(이름도 없는 허름한 곳이나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으며 주인의 모습 때문에 일명 홍금보 아저씨네 집으로 불리며 한국인들에게는 포카라의 명소로 알려져 있음))에서 정말로 맛있는 덴툭(티벳탄 수제비)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거기에 있던 한국인들과 맥주를 한 잔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 데 그들 중에서도 나의 딸과 아주 닮은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의 학교를 중단시키고 6개월째 같이 여행 다니고 있다는 부산의 아주머니가 엄청나게 대단해 보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 설산을 못 본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 상황을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담푸스의 롯지에서,뒷쪽에 안나푸르나 산군이 있건만 운무에 가리고

 

                                    나우난다 부근의 작은 시골 학교

 

                                        카시에서 내려다본 포카라 시내와 페와 호수

 

 

2003.6.10(화)
새벽4시에 눈을 뜨니 기대와는 반대로 심한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으나 이곳의 변덕스런 기후에 기대를 하고 눈을 뜨고 기다리다가 피곤한 나머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이상한 느낌에 후다닥 눈을 뜨니 이미 시계는 아침7시를 가리키고 날씨는 거짓말처럼 쾌청하여 옆방의 스님을 급히 깨워 호텔앞에서 택시(왕복 및 대기시간 포함 500네팔 루피)를 집어타고 사랑코트 아래에 위치한 차량으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뷰 포인트로 향하였다.
뷰 포인트에 오르니 이미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안나 푸르나의 설산군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약30여분 뒤 산 밑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구름들에 의해 모습을 감추는 설산들을 뒤로 하고 레이크 사이드로 돌아와 김치하우스에서 아침 식사 후 모자란 잠을 보충하였다.
오후에 일어나니 다시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이고 호텔 주인장의 말이 본격적인 몬순이 시작된 것 같다고 이야기하여 내일 포카라를 떠나기로 하니 스님은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면서 이곳에 좀 더 머무르겠다고 한다. 해서 저녁에는 페와 호수의 북쪽 운치있는 호반에 자리한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천지가든이란 식당에서 일행들과 스님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이별주를 마셨다.

 

 

 

 

 

                                    사랑 코트 뷰 포인트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산군



2003.6.11(수)
아침6시 기상하여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남쪽으로 인도국경 가까이 위치한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로 가기위해 로칼 버스에 올라 오후1시반경 바이와라란 곳에 도착하니 북쪽과는 달리 이곳은 아직 건기의 마지막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행선지가 동일한 독일 젊은이와 같이 합승 짚을(1인당 20네팔 루피) 이용하여 룸비니에서 약간 떨어진 여러 나라의 사찰들이 산재한 숲 속에 자리한 대성 석가사란 한국 절에 도착하여 환대 속에 깨끗하고 넓으며 개인 모기장까지 구비된 숙소에 여장을 푸니 외국인을 포함한 몇몇 여행객들이 보였다.
 이곳 대성 석가사는 법신이라는 스님이 어려움 속에서도 꾸려가는 곳으로 거대한 규모의 대웅전 공사가 진행 중이며 모든 방문객들에게 자발적인 기부금 외에는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어 성지 순례하는 불교 신도들과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셀프 서비스 식으로 운영하는 식당에서 맛있는 김치를 포함하여 정갈하게 차려진 저녁 식사 후 절 밖으로 나가보려니 숙소의 입구에 “이곳 주위는 늑대, 여우, 원숭이, 독사, 독충 등이 자주 출몰하여 사람을 해치니 야간에는 출입을 자제 하십시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어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오니 갑자기 목과 귀가 몹시 아프며 감기 몸살 끼가 엄습하여 비상약품으로 조치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실제로도 밤새도록 늑대 종류로 추정되는 짐승의 울부짖음이 계속 들려왔다.

 

 

                                      룸비니 가는길에 생긴 돌발 상황 

2003.6.12(목)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더위 때문에 아침6시경 일어나 망고 한 조각과 홍차 한 잔 그리고 짜파티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 후 한적한 숲길을 따라 절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룸비니 유적지를 관람하였다.
황비니 유적지는 그리 크지 않는 규모로 아쇼카 석주와 마야 부인이 출산 때 붙잡고 도움을 받았다는 거대한 나무의 후세나무와 몸을 씻었다는 연못 그리고 폐허화된 사원 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폐허의 사원 중 하나를 발굴하여 그곳을 둘러싸는 기념관을 지었는데 그 안에는 부처님이 태어나자 마자 일곱 발자욱을 움직인 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읇조렸을 때의 그 일곱 발자욱이라며  화석처럼 유리상자로 덮어 놓았는데 역시 일본인다운 발상이라고 생각되었다.
오전9시경 절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해보니 중요한 일 때문에 6월20일까지는 한국에 돌아가야 하고 돌아가는 항공권이 델리 아웃이어서 일단 가능하면 빨리 델리로 가서 시간이 되면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티벳 망명정부가 위치한 다람살라를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오후2시경 합승 짚으로 룸비니를 떠나 바이와라를 거쳐 소나울리라는 국경도시에서 네팔 출국 수속과 인도 입국 수속을 하고 다시 인도로 들어오게 되었다. 부근의 여행사에서 델리행 교통편을 알아보니 요즘이 인도의 결혼 시즌이라서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더구나 상당한 수수료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이마저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다른 여행자들의 충고에 따라 일단 델리행 기차편을 구하기 용이한 바라나시로 이동하기로 하고 다시 끔직한 야간 로컬버스에 몸을 실었다.
살아생전 본적이 없는 바닥을 통해 도로가 훤히 보일 정도의 야간 고물버스는 오후6시 소나울리를 떠나 고락푸르라는 도시에서 결혼축하 행렬이 거리를 가로막는 바람에 2시간을 허비한 후 밤새워 바라나시를 향해 달렸다.

 

 

 

 

                                            룸비니 유적지에서

 

                                           소나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로칼 버스

 

                                         고락푸르 거리에서 마주친 결혼 행열, 2시간이나 막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