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14(화)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계절적으로 여름이고 또한 동북 3성 보다는 훨씬 남쪽이어서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다. 허나 방안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버스를 타고 시내의 중심 거리인 종루 4거리의 이슬람 골목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량펀(凉粉)이란 일종의 국수로 점심을 한 후 혜초와 현장 스님의 얘기가 서려있는 따옌타(大雁塔)와 시가지의 서쪽 끝에 실크로드의 시발점이라는 상징적인 조각물을 둘러보고 오후에 민박집으로 들어와 주인을 통하여 내일 서안 서쪽의 1일 투어를 예약하고 마침 투숙해 있던 프랑스 여행객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서안의 중심 거리
대안탑
실크로드의 시발점을 상징하는 조각물
2005.6.15(수)
아침에 연락이 닿은 가이드를 따라 참가한 서안 서쪽 방향의 1일 투어는 수많은 역사 유적들로 인하여 굉장히 흥미로왔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진시황보다도 수백년이나 이른 전한 시대의 수도인 셴양(咸陽)(지금은 서안 국제공항이 있는 소도시임)의 박물관에서 본 고대 병마용과 비석들 그리고 실크로드 개척의 선구자인 한 무제와 곽거병 장군의 묘, 역사상 유일의 여 황제인 당 측천무후와 그의 남편 고종의 합장묘,비록 손가락에 불과하지만 부처님의 유골의 일부를 소장하고 있다는 파먼스(法門寺)등이 흥분을 자아내었다.
서한(전한) 박물관과 내부,당시의 미륵불이라는데 우리네와는 영 거리감이
무제와 곽거병의 묘
당 고종과 측천의 합장묘,특히 측천의 무자비가 ....
법문사와 부처님의 진신 유골 일부를 소장하고 있는 탑
2005.6.16(목)
가능하면 오늘 야간 기차로 감숙성의 성도인 란쪼우(蘭州)로 떠나기로 하고 아침에 민박집을 나와 역에 가니 마침 표가 있어 밤 22:32분 출발의 K119 열차의 잉워표를 산 후 오늘은 그 유명한 양귀비의 묘를 찾아 가 보기로 하고 가이드북을 들고 어설픈 중국어로 물어물어 여러차례 버스를 갈아 타면서 찾은 양귀비의 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도로가에 별로 찾는 사람도 없이 쇠락한 모습으로 서 있어 "옛 영화의 허무함"이란 말이 딱 어울릴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이 안록산의 난을 피해 장안을 떠나 성도로 피난가던 당 현종이 양귀비가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양귀비에게 사약을 내려야한다는 대신들의 간언을 못이겨 그녀에게 죽음의 독배를 내린 부근이라 하니 한 순간에 사랑하던 사람으로 부터 죽음을 당한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떠올랐다.
양귀비의 무덤은 의뢰로 작고 초라했으며 봉분이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었는데 이는 후세의 여인네들이 양귀비 무덤의 흙이 피부에 좋다고 파 가서 하는 수 없이 최근에시멘트로 마감했다고 하여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에 감탄.
후세의 사람들이 묘사한 양귀비의 모습들, 현재와는 미의 기준이 너무 거리가 있는 듯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한 백거이의 장한가. 헌데 이 장한가를 모택동이 아주 좋아했다는데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지.
'2005년 봄 중국(동북) 및 동티벳'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삥링스 그리고 샤허를 거쳐 랑무스까지 (0) | 2012.02.11 |
---|---|
8.난주에서 씨닝을 거쳐 청해호 다녀오기 (0) | 2012.02.07 |
6.만주리, 장춘을 거쳐 심양까지 (0) | 2012.01.29 |
5.하얼빈을 거쳐 흑룡강변의 흑하까지 (0) | 2012.01.11 |
4.동경성,발해진,경박호를 거쳐 목단강시까지 (0) | 2012.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