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실크로드 여행기

8. 파미르 고원과 쿤자랍 고개를 넘어 소수트까지

獨立不懼 遁世無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1. 11. 24. 21:09

2001.9.13(목) 

드디어 히말라야,힌두쿠시,곤륜,천산산맥이 만나서 이루는 고원지대이며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향해 떠나는 마음이 테러 사건으로 인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파키스탄 국경은 열려있다는 말에 의지해(우리가 국경을 통과한 이틀 뒤부터 국경이 폐쇄되었음)  중국측 마지막 국경 마을이자 타지크족의 마을인 타쉬쿠르칸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이제는 주위의 풍광이 사막지대와는 전혀 다른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악 지대였으며 계곡에는 빙하녹은 뿌연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몇군데의 마을과 검문소를 통과하여 차가 서서히 고도를 높이자 주변에는 만년설을 인 고산과 협곡등의 숨 막히는 풍광이 계속되었으며 특히 주변의 만년설을 인 고산과 빙하호수와 초원은 서로 파스텔톤의 색깔로 기묘하게 어우러져 거의 환상적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곤륜산맥의 최고봉인 콩구르산과 무스타크 아타산(약 7500미터) 아래의 카라쿨리 호수가 압권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수 주변에 모여사는 키르키스족들이 파는 조악한 기념품이나 그들의 독특하면서도 남루한 복장과 겨울이 오기전에 고산에서 내려오는 양치기와 양떼들을 볼때면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습니다.
이곳이 이미 해발 약 3600 미터여서 어질어질한 느낌과 숨이 차는 느낌을 받으며 또한 끝없이 펼쳐지는 황홀한 주변 풍광에 취하면서 약 6 시간의 여정 끝에 타쉬쿠르칸의 피미르 호텔에 도착하였습니다.
말이 호텔이지 시설에 대한 보수 유지가 되지않아 내부는 형편이 없었으나 이국적인 느낌이 그 많은 단점을 가려주었습니다.
여장을 풀고 부근에 있는 폐허의 석두성터를 방문 하였느데 현장스님이 수 개월간 머물며 불법을 전파하던 당시의 번성함과는 엄청난 차이가 느껴졌으며 또한 저녁식사 후 거리를 나가보았으나 날씨도 쌀쌀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일찍 자리에 누웠는데도 불구하고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괴로운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카수카르에서 타쉬쿠르칸까지의 그림같은 풍광

 

 

 

                                             무즈타크 아타산과 카라쿨 호수

 

 

                                              석두성의 폐허

 

                       숙소의 입구에서, 간판에 보이는 여자의 복장이 타지크족의 전통 복장임

2001.9.14(금)

밤새 뒤척이다가 잠을 설친 상태에서 가이드가 재촉하여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니 어제보다는 한결 괜찮아 진것 같았습니다.

진짜 국경은 여기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약 백 수십Km)있으나 국경지대는 너무 고산이고 사람이 상주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과 파키스탄 모두 국경에서 상당히 떨어진 타쉬쿠르칸과 소스트에 이민국과 세관을 두고있었습니다.
국경이 폐쇄될까 서둘러 마을 끝에 있는 이민국으로 갔으나 아직 업무를 시작할 생각 조차 않아 10시까지 줄서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누르라는 위구르인 가이드는 스물 여덟의 총각으로 이 지역의 명문인 우루무치 대학을 나왔다고 하며 좋은 직장과 결혼 그리고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여 아! 여기서도 돈이 문제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출국 수속을 하면서 보니 많은 소규모 보따리 무역상들이 보였으며 파키스탄 특유의 화려한 장식을 한 차량과 푼잡 드레스에 특징적인 모자를 쓴 파키스탄인들이 많이 눈에 띄였습니다.
국경을 향해 가는 길은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는 오르막으로 처음에는 어제와 같은 풍광으로 가끔 야생낙타의 무리도 보이다가 차츰 황량하게 변하면서 급기야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 카라코람 하이웨이는(KKH, 중국어로는 中巴公路)는 많은 눈과 낙석으로 11월 부터 이듬해 4월 까지 년중 6개월은 폐쇄된다고 합니다.
또한 국경까지는 군데군데 원주민들이 일부 살고 있으나 외지인들은 군사적인 이유로 차에서 내릴수 없다고 하나 우리같은 경우는 한번 정도 차에서 내려보았습니다.(국제버스를 탄 경우 고생했다는 여행자들이 있음)
사실 이지역은 중국과 인도간의 영토 분쟁,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유명한 캐시미르분쟁 그리고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의한 국경 획정으로 한민족이 여러나라로 나누어 지고 그에 따른 다민족 국가의 출현으로 요즘 보다시피 그 분쟁의 뿌리가 깊어보였습니다.
늦은 점심때 쯤 해발 4780미터의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 쿤재랍 패스(KUNZARAB PASS)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고개는 발해의 유민으로써 당나라의 유명한 장군이 된 고선지 장군이 지금의 파키스탄 길기트지방까지 진출할 때 이용한 곳이라는 사실을 본 기억이 나 새로운 느낌이 다가왔으나 거세지는 눈보라 때문에 서둘러 파키스탄 쪽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파키스탄쪽 길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뿐만이 아니라 눈 덮힌 고산에서 떨어져 내리는 낙석과 산사태로 수시로 서야 했으며 더구나 두군데 쯤에서는 계곡에 뒤집어 진채로 쳐 박혀 있는 차량들의 잔해가 진땀을 나게 했습니다.
중국의 카쉬카르에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를 있는 길이 약 1400킬로 미터의 이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말이 하이웨이이지 유지보수가 힘들어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 완공하기 까지 수많은 군인들이 희생당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중국측의 희생이 컸다고 하며 이들의 묘지가 길기트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로인해 파키스탄에서는 이길을 세계 8번째 불가사의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파키스탄의 국경마을 소스트에 도착하여 누르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뜻박의 환대를 받으며(korea에서 왔다는 말에 you are welcome이라는 말과 함께 stamp를 꽝꽝 찍어 주었음) 라이베리아호텔이라는 작은 숙소에 여장을 푸니 이곳은 온통 테러사태에 관한 이야기 뿐으로 사람들은 BBC를 틀어주는 티브이 앞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이슬라마바드까지는 현지 가이드가 없다고 하여 한국에서 온 가이드와 내일 그 유명한 훈자왕국(카리마바드)까지 타고갈 차량을 계약하고 자리에 들었습니다.

   길가에 보이는 야생 낙타떼들, 우리 생각보다 낙타는 고기도 맛이없고

가축으로써의 효용성도 떨어진다고 함

 

 

쿤자랍 패스에 가까워 지며 눈도 내리고

 

 

 

쿤재랍 고개의 정상,이미 상당한 눈이 쌓였음

 

                                                   소수트 마을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