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실크로드 여행기

7. 카쉬카르(카스)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1. 11. 23. 21:50

2001.9.11(화)

오전에 호탄박물관을 둘러본 다음 다시 서쪽으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오늘도 힘든 일정으로 서역로와 천산남로가 만나는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도시이자 위구르인들이 중국화 되어버린 우루무치(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성도)보다 더 사랑한다는 카쉬카르(喀什)까지 약 10 시간의 여정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의 풍광은 지금까지와 비슷하였으나 중간에 내가 꼭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는 서부 티벳(아리지방 이라고하며 힌두교와 불교에서 최고의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하는 수미산 일명 카일라스산이 있는곳으로 이 산을 한 바퀴 돌면 생의 업이 소멸된다 함)과 갈라지는 곳을 지나면서는 약간의 흥분도 느꼈습니다.
도중에 수제용 칼로 유명한 영길사(英吉沙)란 마을과 길가에서 자리를 깔고 시간 맞춰 알라신께 기도드리는 위구르인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녁 늦게 카쉬카르의 색만빈관(sherman hotel)이라는 숙소에 도착하여 우리를 파미르 고원과 쿤자랍 고개를 넘어 파키스탄의 소스트까지 안내할 누르라는 위구르인 로컬가이드를 만나고 조선족 가이드와는 한잔의 맥주로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습니다.
구 러시아 영사관을 개조한 이 숙소는 아주 오래된 건물로써 길 건너 존스카페라는 곳과 함께 여행자들의 메카이며 수 많은 여행기에 등장하는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의 여독으로 다음날은(9.12) 여유를 갖기로 하고 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슬람 사원(淸眞寺), 올드타운의 시장, 향비묘등과 시내를 둘러 보았는데 바자르 앞에서 현지인들이 우리나라 고액권을 상당히 가지고 위엔화와 교환을 제안해 놀랐으며 위구르인으로써 청나라 건륭제의 후궁이 된 향비를 상징한다는 예쁜 나비장식에서 한 여자의 일생을 느낄수도 있었습니다.
모택동 동상이 서있는 큰 광장에서는 지나가는 손수레 행상에게서 사과를 사 먹으려다 갑자기 나타난 공안에게 붙들려 손수레를 빼았기고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는 현지인 행상 때문에 난처한 입장에 처해서 공안에게 손짓 발짓으로 우리 탓임을 설명하여 그 행상을 무사히 보내느라고 곤욕을 치렀는데 뒤에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 광장에서는 노점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부근에 전화국이 보여 약 일주일만에 집에 전화도 하고 그림엽서도 부치려고 들렀는데 휴대전화를 사고 판다고 매우 혼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 전화국에서 여행 떠나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건 순간 아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더불어 9.11 테러사태의 발생을 전해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앞으로의 여정이 걱정되었으나 아프카니스탄 영토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녁은 카쉬카르 교외의 석류나무가 우거진 가든에서 위구르식 만찬으로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일행들과 상의한 결과 일단 여행을 계속하기로 하고 우울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이번여행의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술을 약간씩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부터는 수천미터대의 파미르고원을 넘어야 하며 그 이후는 음주가 금지된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카쉬카르로 가는 길에 점심을 위해 들은 마을에서

영길사의 상점에 진열된 칼

시골 마을의 자그마한 이슬람사원

카쉬카르 인민광장에 있는 모의 거대한 동상

향비묘의 모습

카쉬카르 바자르입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