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토) 개천절, 새벽에 비 그리고 종일 흐렸다가 밤에 다시 비
오늘은 우리 민족사의 기원이 시작되었다는 개천절이니 마땅히 경축해야 할 일이다.
허나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배타적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더불어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고 있어 걱정이 되는 상황이나 개인적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저 이런 광풍이 잠잠해 지길 바랄 뿐이다.
각설하고 많은 비는 아니지만 자정이 지나면서 새벽녁까지 약간의 비가 내려 아침 7시경에 일어나니 가을 산은 떨어진 낙엽이 주는 스산한 느낌과 숲내음으로 가득한데 와이프와 오늘의 일정에 대하여 의논해본 결과 둘레길 9 코스와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 등정 중에서 지금이 아니면 와이프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안되면 중간에서 되돌아 온다는 생각으로 천왕봉 등정을 시도키로 하였다.
사실 와이프가 발쪽이 조금 불편하고 날씨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야영지가 등산로 바로 옆이라 어제 밤늦게 까지 힘들어 하며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본 터라 와이프도 어제 까지는 천왕봉 등정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괜찮고 야영지 바로 옆의 등산로로 올라가는 많은 산행객들을 보면서 자기도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갑작스럽게 결정하게 되어 서둘러 비비고 인스턴트 죽으로 아침을 하고 헤드랜턴과 물 그리고 간식등을 넉넉히 챙겨 약간은 늦은 8시 반경 출발하게 되었다.
통천길이라 명명된 중산리에서 로타리 대피소를 거쳐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를 따르는데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난데없이 등산로옆에서 하얀색의 귀엽게 생긴 생후 1개월도 되지 않아 보이는 강아지가 나타나더니 짧은 다리로 낑낑거리며 우리를 따라오려 애를 쓰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는 등산객을 비롯하여 아무런 기척도 없어 도대체 이 강아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여 이자리에 있게 된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여 그냥 무시하고 가자니 강아지가 너무 어려 고양이에게도 잡아 먹힐것 같고 그렇다고 우리가 데리고 갈수도 없어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니 마침 이른 새벽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젊은 커플이 보여 상황을 애기하니 자기들도 의아해 하면서 일단 자기들이 데리고 하산하여 공원 관리사무소에 데려다 주던지 하겠다면서 안고 내려가 주어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재촉하여 칼바위, 장터목으로 향하는 유암폭포 계곡과의 갈림길 그리고 망바위를 거쳐 11시경 이미 상당히 단풍으로 물든 천왕봉쪽이 올려다 보이는 로타리 대피소 직전의 조망점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러나 곱게 물든 단풍이 군데군데 터널을 이룬 등산로를 따라 로타리 대피소와 법계사 그리고 개선문과 이미 단풍이 절정에 다다른 듯한 천왕샘 부근을 지나 오후 1시경 무사히 천왕봉 정상에 설 수 있었다.
허나 예상대로 정상 주위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여 우리는 포기하고 대신에 부근에서 정상부를 배경으로 마스크를 끼고 있는 이상한? 가상현실 같은 인증샷을 남기고 부근의 한자리를 차지하여 준비해온 간식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장터목쪽으로 하산길을 재촉하였다.
장터목까지의 하산길은 단풍으로 물든 지리산 주능선을 운무가 넘나 다니는 멋진 풍경을 보여 주었으나 제석봉의 멋있는 그러나 사실은 불행한 산불의 결과물인 고사목들이 세월이 가며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기도 하여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오후 2시가 약간 넘어 장터목에 도착하니 이곳도 역시나 사람들로 인산인해이고 구름과 운무로 인하여 조망도 없어 서둘러 유암폭포골로 하산길을 택하여 지루한 내리막을 지속하는데 오후 4시쯤 유암폭포를 지나고 로타리 대피소쪽 트레일과의 합류점을 지날 때 쯤 부터는 기어이 약간의 비가 내리고 어둑해져 오기 시작하였다.
하여 안전이 최우선이라 헤드랜턴을 켜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면서 와이프의 페이스에 맞추어 천천히 하산을 하여 오후 6시경 무사히 야영장에 도착하니 전체적으로 9시간 반 정도가 걸린 셈이 되었고 비록 와이프는 양 다리에 상당한 통증이 있다 하나 지리산 천왕봉을 생애 처음 올랐다는 성취감이 더 큰듯 하였다.
다행히 비도 잦아들어 오늘의 무사 산행을 축하하며 불을 밝히고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지리산록의 나무 아래에서 참치 김치찌게를 주 메뉴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건강한 피로감을 안고 잠을 청하였다.
'대한민국과 서울의 이야기 > 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성삼재에서 뱀사골로 (0) | 2020.10.14 |
---|---|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 (0) | 2020.10.14 |
어느 가을날의 꽃들 (0) | 2020.09.29 |
일일삼산(一日三山) (0) | 2020.09.29 |
대전시내 나들이(1) (0) | 2020.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