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서울의 이야기/2018년

대전 계룡산(천장골에서 남매탑과 삼불봉을 거쳐 갑사까지)

獨立不懼 遁世無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2018. 12. 14. 17:11

2018.12.10(월) 맑음

숙소에서 간단하게 햇반과 참치 김치찌게와 김으로 아침을 하고 간식 등등을 챙겨 버스를 환승하여 나는 이곳 대전에 자리한 후 두번째로 와이프는 1987년 이후로 처음 계룡산을 향하였다.

월요일 오전이라 거의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하고 겨울이라 약간은 쌀쌀하지만 아주 청명한 날씨속에 오늘은 남매탑과 삼불봉을 거쳐 갑사까지 넘어 가기로 하고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기 까지 한 천정골로 들어서 나목으로 변한 나무들 사이의 등산로를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데 북한산의 하루재와 느낌이 비슷한 능선상의 큰 배재에 가까이 다가서자 지난 주에 내린 눈들이 아직도 일부 잔설로 남아 지금이 겨울임을 일깨워 주었다.

큰 배재에서 능선 사면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남매탑 고개를 넘어 남매탑에 도착하였는데 와이프도 어렵지 않게  잘 따라와 주었다.

이곳에서 옛 추억도 더듬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 중고교시절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란 수필과 더불어 한국 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상보 선생님의 "갑사가는 길"이란 수필도 떠오른다.

 

                 갑사로 가는 길                                                                                       이 상 보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한 콘크리트 사찰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 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 주변을 살펴보고 갑사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은, 마치 북국의 설산이라도 찾아간 듯한 아취에 흠씬 젖는다.

원근을 분간할 수 없이 흐릿한 설경을 뒤돌아보며, 정상에 거의 이른 곳에 한일자로 세워 놓은 계명정사가 있어 배낭을 풀고 숨을 돌린다.

뜰 좌편 가에서는 남매탑이 눈을 맞으며 먼 옛날을 이야기해 준다.

때는 거금 천 사백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원년인데, 당승 상원대사가 이 곳에 와서 움막을 치고 기거하며 수도할 때였다.

비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요동하는 어느 날 밤에, 큰 범 한마리가 움집 앞에 나타나서 아가리를 벌렸다.

대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은 채 염불에만 전심하는데, 범은 가까이 다가오며 신음하는 것이었다. 대사가 눈을 뜨고 목 안을 보니 인골이 목에 걸려 있었으므로, 뽑아 주자, 범은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난 뒤 백설이 분분하여 사방을 분간할 수조차 없는데, 전날의 범이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버렸다.

대사는 정성을 다하여, 기절한 처녀를 회생시키니, 바로 경상도 상주읍에 사는 김 화공의 따님이었다.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자 하였으나, 한겨울이라 적설을 헤치고 나갈 길이 없어 이듬해 봄까지 기다렸다가, 그 처자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전후사를 갖추어 말하고 스님은 되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김 처녀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를 받은 바요, 한없이 청정한 도덕과 온화하고 준수한 풍모에 연모의 정까지 골수에 박혔는지라, 그대로 떠나 보낼 수 없다 하여 부부의 예를 갖추어 달라고 애원하지 않는가?

김 화공 또한 호환에서 딸을 구원해 준 상원 스님이 생명의 은인이므로, 그 음덕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와하며, 자꾸 만류하는 것이었다.

여러 날과 밤을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의 인연을 맺어, 함께 계룡산으로 돌아와, 김 화공의 정재로 청량사를 새로 짓고, 암자를 따로 마련하여 평생토록 남매의 정으로 지내며 불도에 힘쓰다가, 함께 서방 정토로 떠났다.

두 사람이 입적한 뒤에 사리탑으로 세운 것이 이 남매탑이요, 상주에도 또한 이와 똑 같은 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탑에 얽힌 남매의 지순한 사랑도 끝이 없어, 탑신에 손을 얹으니 천 년 뒤에 오히려 뜨거운 열기가 스며드는구나!

얼음장같이 차야만 했던 대덕의 부동심, 백설인 양 순결한 처자의 발원력, 그리고 비록 금수라 할지라도 결초심을 잃지 않은 산중호걸의 기연이 한데 조화를 이루어, 지나는 등산객의 심금을 붙잡으니, 나도 여기 몇일 동안이라도 머무르고 싶다.

하나,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려 하고 땀도 가신지 오래여서, 다시 산허리를 타고 갑사로 내려가는 길에, 눈은 한결같이 내리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서 간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우리도 암자의 뒷 배경을 이루는 삼불봉을 향하여  남매탑을 떠나는데

비록 눈은 내리지 않고 있었지만 수필의 화자인 이상보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곳까지는 한두사람의 등산객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삼불봉을 지나 금잔디 고개를 거쳐 깊고 수려한 갑사계곡을 따라 갑사에 도착할 때 까지는 한사람의 등산객도 만나지 못하는 어쩌면 온전히 산전체를 다 소유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갑사 부근에서는 아름드리 고목들만이 오래전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였고 일주문을 나서니 시간은 이미 오후 3시가 넘어서고 있어 우선 공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본 결과 오후4시 10분 이어서 부근의 식당에서 그집의 자신있는 메뉴인 우렁된장 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하였는데 배가 고파서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먹어본 된장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이 일품이었다.

이후에는 버스를 타고 공주의 종합버스 터미날에 도착하고 와이프는 당연히 다시 대전으로 올 필요없이 그곳에서 바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나는 다시 대전 유성을 돌아오는 버스를 타며 1박2일의 마무리를 하였다.

 

 

                                                                 산행 루트

 

 

                                                         동학사 주차장

 

 

 

 

 

 

 

 

 

 

 

 

 

 

                                                        천정골을 따라 큰 배재까지

 

 

 

 

 

 

 

 

                                                       남매탑에서

 

 

                                                                공주시

 

 

                                                         세종시

 

 

                                                         대전시

 

 

 

 

 

 

 

 

 

 

 

 

                                                             삼불봉에서

 

 

 

 

 

 

                                                       금잔디 고개까지

 

 

 

 

 

 

 

 

 

 

 

 

 

 

 

 

 

 

 

 

 

 

 

 

 

 

 

 

 

 

 

 

 

 

 

 

 

 

                                       갑사 계곡을 따라 갑사까지 그리고 늦은 점심


              갑사계곡의 용문폭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