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여행(3)-첨찰산 산행과 용장성 폐허 그리고 벽파진
2019.3.31(일) 맑으나 엄청난 바람과 꽃샘추위
지난밤에 머그잔으로 세잔 정도 마신 홍주덕에 편안히 자고 아침 7시경 일어나니 날씨는 쾌청하나 바람이 상당하고 예보와 같이 꽃샘 추위로 약간 쌀쌀한 느낌이다.
하지만 진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떨치고 일어나 햇반과 포장된 설렁탕을 데우고 김치를 비롯한 밑반찬으로 아침을 하고 8시반경 첨찰산 등산을 위해 야영장을 나서 삼별초 공원과 운림 예술촌쪽을 거쳐 통상적인 첨찰산 등산의 들머리와 날머리인 쌍계사와 그 유명한 조선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에 은거하였던 운림산방(雲林山房) 입구의 주차장을 향하였는데 아직 아직 이른 봄이라서인지 상당한 돈을 들여 조성하였을 듯한 공원과 한옥 스타일의 숙박등의 여러 시설물들이 황량해 보여 너무 낭비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주차장을 기점으로 쌍계사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약 3시간에 걸쳐 첨찰산 정상, 아리랑비.운림산방의 순서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였는데 날씨가 청명하여 첨찰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일품이었으며 운림산방의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남도 전통 미술관에서의 여러 그림들은 남도 문화의 대단함을 말해 주는 듯 하였다.
정오경 야영장으로 돌아와 신라면을 하나 끓여먹은 후 텐트와 장비를 철수하여 오후 1시경 다음 목적지인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이곳 진도로 옮겨온 뒤 나름 왕을 옹립한 국가라는 개념에 의해 행궁 겸 군사적인 근거지로 삼은 용장성의 폐허를 향하였는데 진도대교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이곳 용장성터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크게 둘러보면서 느끼는 쓸쓸함과 허무감은 3년간에 걸친 진도와 제주도에서의 그들 삼별초들의 항쟁과 처절한 실패의 결과와 더불어 가슴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용장성을 드른 후에는 지척의 바닷가에 있는 벽파진(碧波津)는 항구를 들렸는데 이곳의 지리적 위치가 울돌목의 바로 동쪽이라 울돌목을 드나드는 배들에 대한 감시가 용이하여 명량대첩 직전에 충무공이 이곳에 머물며 왜놈들과 일종의 가벼운 전초전 성격의 전투도 벌이면서 명량대첩이라는 세계해전사에 길이남는 큰 해전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또한 벽파진 항구의 큰 바위 언덕위에는 엄청난 크기의 이순신 장군 승전비와 더불어 삼별초의 항쟁 초기 삼별초들과 여몽연합군들의 협상을 위한 회담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벽파정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정자도 복원되어 주위와 어울려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는 바 이제는 이곳이 400여년 전 한 나라의 운명을 건 거대한 전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동떨어진것 같은 착각도 들기도 하였다.
벽파진을 떠난 후에는 대전의 숙소를 향하여 일사천리로 달려 저녁 6시쯤 도착함으로써 나름 바쁘고 피곤하였던 진도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하였고 운전 중간에 졸음으로 인하여 대여섯 차레나 잠깐씩 휴게소에서 쉬었는데 고속도로 중간중간에 졸음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경고문들이 상당히고맙다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삼별초 공원과 운림 예술촌 마을, 집마다 진도개?
주차장에서 쌍계사, 첨찰산 정상, 아리랑비, 운림산방, 남도 전통미술관을 거쳐 다시 주차장 그리고 야영장까지
용장성터의 폐허에서
벽파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