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초부터 본의 아니게 약 3주간의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새로운 직장을 구하여 열심히 다니고 있던중 9월 추석 무렵에 직장이 다른 재단으로 인수 되는 일이 일어났고 처음에는 고용 승계를 약속했던 사람들이 시일이 조금 지나자 약간의 위로금을 제시하며 사퇴를 종용하던 중 작년 히말라야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진 작가 조진수님이 연락이 와서 늘 그리던 금단의 땅 "돌파" 트레킹을 제안하여 흔쾌히 승낙하고 10월 초순에 직장을 그만 두고 또 다시 히말라야를 향하여 포카라를 기준으로 2008.10.18(토)일부터 43박 44일(저의 경우는 42박44일)의 네팔 돌파 캠핑 트레킹을 하였다.
같이 동행한 분들은 히말라야 사진 작가 조진수님과 온 라인을 통해 인연이 닿은 금융계에서 은퇴하신 이선생님으로 두 분 모두 여러 가지로 대단하신 분 들이었다. 전체적인 준비와 기획은 조 작가님이 하였으며 그쪽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충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좋은 트레킹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3명이 1개월 반 이라는 짧지 않는 시간을 같이 걷고, 보고, 숙식을 함께 하는 캠핑 트레킹을 하였지만 느낌과 생각은 각자 다를 수 밖에 없음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며 또한 같은 지도를 놓고 보면서도 눈앞의 설산 이름을 각자 서로 다르게 생각 할 정도로 그 지역 정보가 너무 없었기에 앞으로의 얘기는 단지 저의 개인적인 견해와 느낌일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2003년 봄 처음으로 카투만두를 방문 했을 때 처음 네팔의 돌파(혹은 돌포)란 지역을 접한 후 잊고 지내다가 수년전 우연히 피터 매티슨의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원제 The Snow Leopard)"이란 책에서 다시 돌파에 대한 신비한 얘기를 읽고 Bucket List에 담아두고 있던 중 작년 루크라의 공항에서 돌파에 대한 한 장의 포스터를 다시 접한 적이 있어 가보지 않았음에도 왠지 낯설지 않는 느낌이었다.
조 작가님의 제안을 승낙하고 난 뒤 자료를 찾아보니 론리 프래닛의 “Trekking in The Nepal Himalaya"와 피터 매티슨의 책 그리고 KBS의 차마고도 제작팀들이 제5편인 ”히말라야의 소금 캐라반“ 취재와 촬영을 위해 2006년 10월과 11월에 걸쳐 항공편으로 주팔로 들어가 두나이, 폭숨도 호수, 세이 곰파를 거쳐 살당에 도달 후 다시 폭숨도로 되 돌아와 카그마라 라를 넘어 후리코트까지의 얘기를 실은 ”사람과 산“ 잡지의 2007년 1,2,3,4월호와 역시 항공을 이용해 폭숨도 호수와 도 타랍 트레킹을 한 얘기를 실은 월간 산 2008년 5월호 정도밖에 찾을 수 없었으며 여기에다 현지에서 산 돌파 지도를 트레킹시 참고하였다.
그리고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뒤 돌이켜보며 전체적으로 몇 가지 느낀 점과 언제 바뀔지 모르지만 유용하다 생각되는 정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코스.
우리들은 처음에 전체 기간을 약 50일 정도로 하여 상 돌파(Upper Dolpa, 론리에는 Inner Dolpo)와 하 돌파(Lower Dolpa) 지역을 속속들이 둘러보기로 하고 또한 라라호수 지역도 고려해 보았으나 거리가 포카라에서 너무 멀고 또한 원래 돌파지역도 아니기에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여 제외하였다.
또한 통상 남쪽의 베니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하 돌파를 거쳐 북쪽의 상 돌파 지역을 지나 좀솜으로 나오는 것이 고산증 예방 등의 면에서 정상적이나 트레킹 시작일이 이미 10.18(토)일 이라 상 돌파 지역의 5천 미터 급 고개를 넘는 것이 문제될 가능성이 있어 반대 방향으로 돌기로 결정하였는데 두 분은 잘 극복 하였으나 나는 이것으로 인해 심한 고산증을 겪는 값진 경험도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의 코스는 “포카라-항공편-좀솜-카그베니-차르카-틴제가온-시멘가온-카모가온-살당-남쿵-세이 곰파-폭숨도 호수(링모가온)-도 타랍-다드가온-테란가온-뮤코트가온-카코트가온-라이시캡-타라코트 지역-돌파탄-다르방-마이크로버스-베니-버스와 짚-포카라”의 코스가 되었으며 중간 중간에 5천 미터 이상의 고개 십 수개를 넘었다.
둘째, 퍼밋과 그 비용.
론리에는 분명히 상 무스탕과 같이 상 돌파지역은 기본이 10일에 700달러이고 이후 1일당 70달러라고 명시되어 있고 그렇게 알고 갔었는데 최근 그 규정이 바뀌었는지 기본이 500달러였으며 기간은 관계없는 것 같았으며 퍼밋의 영수 금액 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여 나중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상 무스탕도 같이 내렸다는데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의뢰한 트레킹 에이전시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 정확한 것은 말하기 어렵고 하 돌파 지역은 1주에 10달러라고 론리에 적혀있던데 기간은 관계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KBS팀의 글을 읽어 보면 정부 연락관을 동행했다던데 우리들의 경우에 그런 것은 없었는데 이는 아마 방송 촬영이라서 연락관을 동행했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 돌파지역에서 저희와 반대 코스의 유럽 팀을 몇 팀 만났는데 아무도 연락관을 동행한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절대 안 되고 2인 이상이어야 한다고 분명히 적혀있는데 상 돌파에서 저희와 반대 방향의 미국인 나 홀로 여자 트렉커를 만났었는데 이도 퍼밋 비용을 2배로 내는 편법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그 규정이 없어진 건지도 아무도 확실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의 경우에는 500달러짜리 상 돌파 퍼밋과 10달러짜리 하 돌파 퍼밋 그리고 그 지역을 통과하기에 내야한다는 2,000루피짜리 안나푸르나 보호구역 퍼밋과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징수하는 세이-폭숨도 국립공원, 돌파탄 사냥 보호구역 국립공원 입장료 각각 1,000루피 등 5가지의 퍼밋 비용와 입장료를 지불하였다. 따라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는 후진국(?)의 관료와 행정 시스템을 참고로 하여 항상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셋째, 포터와 쿡, 셀파 그리고 가이드 등의 사람에 관한 것.
보통 항공편을 이용하여 주팔(돌파 공항이 위치한 곳으로 이 지역의 행정 중심지인 두나이와 약 서너 시간 거리)로 들어오는 경우 항공편이 포카라에서는 없고 오직 카투만두에서만 있으며 그것도 직접 연결되지 않고 네팔간지를 거치는 수 밖에 없어 필수 인원만 카투만두에서 데려오고 포터등의 인원은 현지에서 구하는 경우가 많아 보였으나 이도 포터들이 처음 고용한 곳까지 데려주기를 요구하는 경우 라운드 트레킹에 많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현지의 임금이 오히려 많이 비싸다는 얘기도 있었다.
또한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캠핑을 해야 하므로 생각보다 많은 인원의 포터들이 필요한데 우리들의 경우는 일단 항공 이용을 배제했기에 트레킹 에이전시에서 포카라를 중심으로 사람을 구하고 팀을 구성했는데 시기가 성수기고 가고자 하는 지역이 험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의 식단을 한식으로 하고 조 작가님의 장비가 있고 하여 처음에는 약 35명의 인원을 구성하려고 하였으나 특히 포터 구하기가 힘들어 약간의 임금을 인상하고 5천 미터 이상의 고개를 넘을 때 마다 500루피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하고서야 30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트레킹의 주무(네팔어로 사다)와 수석 쿡을 제외한 인원은 우리보다 4일 앞서 10.14(화)일 육로를 이용 좀솜으로 출발하고 10.18(토)일 포카라에서 첫 비행기로 우리가 좀솜에 도착하니 그 사이에 포터 1명이 신발과 자켓 그리고 약간의 선금을 챙겨 사라져 버린 황당한 일도 있었으며 좀솜에서도 모자란 포터를 구하지 못해 결국은 말 6필을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트레킹로상의 몇 군데 큰 마을에는 티 하우스를 겸한 상점이 있어 최악의 경우 슬리핑 백만 있다면 이용 가능하지만(내가 고산증으로 하루 이용 했음) 기본적으로 캠핑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넷째, 전체적인 느낌.
오지라고 불리는 곳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지역도 역시 대부분의 지역들이 각각의 자료들에서 지명, 고도 등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이드와 심지어 현지 주민들의 말과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아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예를 들면 마을의 이름들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으나 고개들의 이름은 자료마다 조금씩 달랐으며 특히 고도는 지도와 책 그리고 가져간 고도계와도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물론 우리들의 트레킹 코스가 필수적인 폭숨도 호수와 세이 곰파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좀 더 오지를 가보자는 것이어서 그런 현상이 더했으리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우선 돌파(Dolpa)와 돌포(Dolpo)중 어느 것이 정확한 표현이냐고 가이드와 국립 공원 직원에게 물어봐도 앞으로는 돌파로 쓸 것이라는 정도의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으며 가이드 문제에 있어서도 영어는 물론 어느 정도 한국어도 가능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돌파 지역을 속속들이 직접 경험해본 가이드를 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폭숨도 호수 절벽길의 첫 번째 나무 다리를 경계로 나누어지는 북쪽의 상 돌파 지역은 티벳이라고 할 만큼 네팔의 행정력과 교육의 혜택이 미미하여 상당수의 나이든 사람들은 네팔어를 사용치 못하고 오직 티벳어만 사용하고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물자들도 대부분 티벳에서 국경을 넘어온 것으로 라사 맥주 캔과 중국제 코카 콜라 캔, 중국제 담배와 담요 등의 물건들이 아주 흔하며 네팔제 물건은 오히려 보기 힘들 정도였다.
또한 자연 경관은 설산의 아름다움만 생각한다면 쿰부나 랑탕,안나푸르나등 네팔의 다른 지역에 비해 그렇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느낌이었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고산들과 간간히 보이는 설산 그리고 폭숨도 호수의 물빛과 세라 라,낭다로 라,누마 라,장 라,잘자라 라등의 뷰 포인트에서 보이는 설산들의 모습 특히 다울라기리 산군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특히 티벳 불교의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불교 유적들
과 이미 변해가고 있는 티벳보다 더 티벳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티벳탄들의 모습은 모든 수고를 상쇄시킬 만 하다고 생각되었다.
허나 이곳도 돈과 문명이라는 괴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듯 일부 마을들은 쓰레기로 더럽혀져 있고 길이 외부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도 타랍 부근에서는 경운기와 오토바이도 각각 1대씩 보았다. 따라서 피터 매티슨이 얘기한 대로 “하루 걸음으로 한 세기 전으로”란 표현은 이미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일 만큼 이곳도 변화의 물결이 서서히 밀려드는 느낌이었으며 이런 변화에는 이곳에서 많이 생산된다는 동충하초도 한 몫을 거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폭숨도 호수의 캠프사이트에 있는 국립공원 사무실의 직원 말이 상,하 돌파 합하여 1년에 300명 정도의 트레커가 이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 빨간선이 이번 트레킹 루트의 개념도)